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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전 국정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국가전산망 화재는 단순한 기술적 사고로 볼 수 없습니다. 이번 화재로 인해 행정안전부 산하 주요 전산 시스템 700여 개가 동시에 중단되었고, 국민 민원, 세금, 복지, 치안 등 여러 공공 서비스가 차질을 빚었습니다. 겉으로는 UPS 리튬이온 배터리의 발화로 인한 물리적 사고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 디지털 인프라 전체의 구조적 취약성이 숨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한 나라의 전산 체계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1. 화재보다 무서운 정부의 느린 대응

화재 직후 정부는 ‘즉각 복구’를 공언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총 709개 장애 시스템 중 복구된 것은 약 190여 개에 불과하며, 이는 전체의 27% 수준입니다. 특히 1등급 핵심 시스템 중 절반가량이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전산실은 분진 제거와 장비 점검 단계에 머물러 있어 재가동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연은 단순히 장비 문제라기보다, 정부 위기대응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국가전산망은 중앙집중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 건물, 한 센터에 대부분의 핵심 서버가 모여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번의 화재나 정전으로도 전국적인 서비스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집중된 구조에서는 재해 복구(Disaster Recovery) 시스템이 사실상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번 사고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경고입니다. 이번 화재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정보 공유 체계의 혼선입니다. 각 부처 간 통신망이 일시적으로 끊기면서 중앙 대응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초기 대응 시각조차 부처마다 상이하게 보고되었으며, 복구 인력 투입 결정에도 지연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행정 지휘체계의 비효율성을 상징합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정보의 신속한 공유와 역할 분담이 중요하지만, 현재의 체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 전산망의 복구력 이전에 ‘의사결정 속도’가 위기를 키우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 2.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된 국가 시스템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우려되는 점은 외부의 사이버 공격 위협입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국정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만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약 170만 건의 공격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정부 행정망과 지자체 전산망을 겨냥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산망 화재 이후, 일부 시스템은 임시 서버로 이전되었고, 데이터 백업 파일이 외부 경로를 통해 전송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암호화나 접근 제어가 완전하지 않다면 보안 공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해커들은 시스템 취약점을 탐색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물리적 사고와 사이버 공격이 동시에 일어나면 방어력은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화재로 인한 물리적 피해가 장기화될수록, 외부 사이버 공격자들은 이 틈을 노립니다. 공격자들은 네트워크 복원 과정에서 생성되는 임시 포트를 탐지하거나, 복구용 장비의 접근 권한을 악용하여 내부로 침투하려 합니다. 특히 중국·북한 해킹 그룹은 과거에도 전력망, 금융기관, 언론사 서버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공격을 감행해왔습니다. 이번 사태는 그들이 정부 시스템의 구조와 대응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때문에 사이버 방어 체계 또한 단순히 기술 보안이 아니라, 위기 시 ‘정보 유출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작동 훈련이 필요합니다.
🔐 3. 국민 개인정보, 앞으로 안전한가?

국가전산망에는 행정, 세금, 복지, 건강보험, 병무, 경찰 등 국민의 모든 주요 개인정보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정보들은 상호 연결되어 있어, 한 서버가 손상되면 연쇄적인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구 과정에서 임시 서버를 통한 데이터 복원은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안이 미흡할 경우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집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데이터 유출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러한 발언이 실제 보안 검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구 작업 중 데이터가 일시적으로 암호화되지 않거나, 외부 접근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면 잠재적인 유출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은 바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한가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부 공공기관은 민원 처리를 위해 외부 클라우드 시스템을 임시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편의성을 높이지만, 데이터 주권 측면에서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외부로 나간 개인정보는 완전한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백업 장비 교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로그 데이터, 접근 기록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추후 공격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유출 없음”을 단정하기보다, 복구 전후의 데이터 무결성 검증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 4. 반복되는 원인 — 책임 구조와 예산의 문제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책임의 부재’와 ‘예산의 단절’입니다. 각 부처는 자신들의 시스템만 관리하고, 통합 위기 대응 체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이버보안과 재난 복구가 분리되어 운영되며, 예산은 단기 사업 중심으로 편성됩니다. 그 결과, 재해 복구 훈련은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백업센터는 실제 가동이 검증되지 않습니다. 위기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실행력은 부족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유사한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것입니다. 정부 전산망의 예산 구조를 살펴보면, 실질적인 보안 강화보다는 시스템 유지보수에 대부분의 예산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신규 보안 인프라 구축이나 위기 대응 인력 확충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 투입됩니다.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예산이 추가로 배정된다는 점입니다. 즉, ‘사후대응형 행정’이 고착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책임 소재가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어, 사고가 나도 명확한 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습니다. 결국 디지털 인프라는 기술보다 ‘운영 거버넌스’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 5. 지금 필요한 것은 디지털 안보의 재정의

이제는 복구율이나 장애 수치보다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국가의 디지털 생명선은 얼마나 안전한가?” 디지털 사회에서 정보 시스템은 단순한 행정 도구가 아니라 국가 안보 그 자체입니다. 이번 사태는 물리적 재난, 행정 지연, 사이버 위협이 동시에 얽힌 복합 위기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로운 안보 개념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핵심 시스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모든 전산망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방식은 위험합니다. 지역별 이중화, 클라우드 기반 백업, 민관 협력체계를 통해 복원력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 물리적 재난과 사이버 공격을 통합 관리하는 ‘국가 디지털 위기대응센터’를 설립해야 합니다. 셋째,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안보 기본법’을 제정하여 물리적 인프라와 사이버 보안을 함께 관리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디지털 안보의 개념은 단순한 해킹 방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국가 전산망은 행정, 산업, 금융, 의료 등 모든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중 하나라도 마비되면 국가 기능 자체가 위축됩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재난 대응 훈련에 사이버 복원 시나리오를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합니다. 또한 민간 클라우드 기업과의 협업 체계를 제도적으로 구축하여 위기 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각국은 이미 ‘디지털 복원력(Resilience)’을 국가 안보 지표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안보를 국방·경제와 동등한 수준의 전략적 과제로 다루어야 합니다.
📍 결론 — 화재보다 무서운 안보 불감증

국가전산망 화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일부 전산실은 재가동되지 않았고, 복구 인력은 피로 누적 상태입니다. 그 사이 외부 공격자는 이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사고’로 치부한다면, 다음 재난은 화재가 아니라 해킹, 혹은 데이터 조작의 형태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인식의 변화입니다. 디지털은 더 이상 편의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기반입니다. 우리가 ‘안전하다’는 착각에 머무르는 순간,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안보를 다시 정의하고, 그 안에 국민의 정보 생명선을 포함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