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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는 세계적인 수산 국가로,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이 만나는 해양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특히 이 지역은 차가운 훔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어류와 해양 생물이 대량으로 서식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대량 어획되는 대표적인 해양 생물 중 하나가 바로 대왕오징어(Humboldt squid, Dosidicus gigas)입니다. 일반적으로 '대왕오징어'는 세계적으로 거대 심해오징어(Architeuthis)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페루에서 주로 어획되는 것은 남미 태평양에 서식하는 험볼트오징어로,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이 글에서는 페루 해역에서의 대왕오징어 생태와 환경 변화에 따른 서식 패턴, 그리고 수출 산업과 지역 어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1. 페루 해역의 환경과 대왕오징어의 서식 조건

페루 해안은 남극에서 북상하는 훔볼트 해류(Humboldt Current)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지역입니다. 이 해류는 찬 물과 함께 풍부한 영양염류를 해수면으로 끌어올리는 '용승(湧昇, upwelling)' 현상을 유발해 플랑크톤과 먹이 생물의 대량 증식을 유도합니다. 이러한 생태적 조건은 대왕오징어를 포함한 다양한 포식자들에게 이상적인 먹이터를 제공합니다. 실제로 험볼트오징어는 주로 수심 200~700m에 서식하며, 야행성으로 밤이 되면 얕은 수심으로 올라와 먹이를 사냥합니다. 험볼트오징어는 평균 몸길이가 약 1.5~2미터에 달하며, 최대 50kg까지 자라는 개체도 있습니다. 강한 근육질 촉수와 갈고리형 흡반을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며 먹잇감을 사냥하는 능동적 포식자입니다. 특히 낮은 산소 농도에 적응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일반적인 생물들이 기피하는 수심 영역에서도 왕성한 활동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생존력 덕분에 험볼트오징어는 페루 뿐 아니라 칠레 북부, 에콰도르 인근 해역에서도 안정적으로 번식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에도 비교적 강한 내성을 보입니다. 이 오징어는 연중 거의 대부분 산란이 가능하지만, 수온이 올라가는 12월부터 3월 사이에 번식률이 특히 높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해양 온도와 번식 생리학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며, 기후 변화가 이 생물의 개체 수 조절에 직간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험볼트오징어가 단순히 특정 수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직 이동뿐 아니라 지역 간 회유도 자주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먹이의 밀도, 수온 변화, 염분 농도와 같은 물리적 환경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의미합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이 오징어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색을 빠르게 변화시켜 몸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특징입니다. 이는 위협 시 위장 또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해석되며, 실제 군집 사냥 시 개체 간 신호로도 사용된다는 가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페루 해역에서 자주 목격되는 이 현상은 험볼트오징어가 단순한 포식자 이상으로, 고도로 발달된 행동 생태를 가진 종임을 나타냅니다.
2. 기후 변화가 미치는 서식지 변화와 생태 영향

최근 수십 년 간 지구 해양의 수온 상승과 엘니뇨 현상은 페루 연안의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1997 ~ 1998년, 2015 ~ 2016년의 강한 엘니뇨 기간 동안 페루 북부 연안의 해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대형 어류들이 집단 이주하거나 폐사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왕오징어의 경우 이러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오히려 서식 범위를 북쪽으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중남미 연안의 제한된 해역에만 분포하던 험볼트오징어가 최근에는 멕시코만, 캘리포니아 해역까지 진출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는 이 종이 높은 유연성을 지닌 생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일부 해양학자들은 대왕오징어가 '기후 변화 적응 생물지표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식지 확장은 기존 생태계에 혼란을 주며, 지역 어종과의 먹이 경쟁, 포식자-피식자 관계 재편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연안에서는 험볼트오징어의 북상이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에 변화를 야기했으며, 지역 어업에도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페루 해역에서도 지속적인 해수 온도 상승이 험볼트오징어의 산란 시기와 장소에 변화를 유도함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어획 패턴이 재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부 해양 생태학자들은 대왕오징어의 북상 및 확산 현상이 페루 해역에서의 개체 밀도 감소와 연관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개체군 간의 경쟁 완화 또는 새로운 자원 확보를 위한 전략적 이동일 수 있으며, 동시에 서식지의 산소 농도 변화나 염분 농도의 변동도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니뇨 기간 동안 용존 산소량이 줄어들면 험볼트오징어는 더 깊거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부 기존 어장에서는 어획량이 급감하는 반면, 비전통적 지역에서는 어획이 갑작스럽게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어민들의 대응 체계에도 혼란을 초래하며, 장기적 관점에서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경제 활동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3. 페루 수산업과 지역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

페루는 세계 3대 수산물 수출국 중 하나로, 특히 대왕오징어는 수산 가공 및 냉동 수출 산업의 주력 품목 중 하나입니다. 2023년 기준, 페루는 연간 약 50만 톤 이상의 험볼트오징어를 어획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중국, 한국, 스페인 등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 오징어는 주로 냉동 슬라이스, 건조품, 가공 어묵 재료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어 국제 시장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대왕오징어 산업은 페루 내에서 약 20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특히 북부 연안 도시인 피우라(Piura), 찜보테(Chimbote) 등지에서는 주요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획부터 가공, 포장, 수출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은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안정적인 관리와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획 문제, 비공식 어업, 불법조업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일부 어업인은 어획량을 늘리기 위해 치어까지 포획하거나, 금어기를 지키지 않는 등 지속 가능한 수산 관리 원칙을 위협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페루 정부는 2024년부터 위성기반 어선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금어기 위반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또한 국제 환경 단체들은 대왕오징어 산업이 해양생태계 보전과 공존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어업 인증(Sustainable Fishing Certification)’ 제도의 도입을 권장하고 있으며, 일부 수출업체는 이미 관련 인증을 획득해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험볼트오징어의 가공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단순 어획에서 가공식품 수출 중심의 구조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지 기업들은 오징어 살을 이용한 냉동볶음류, 수산캔, 반조리 식품 등을 개발하여 미국, 일본,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이는 부가가치 확대와 고용 증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성 노동자의 고용 비중이 높아지면서 수산업이 지역 내 성평등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반면, 일부 중소 어민들은 대형 수출업체 중심의 유통 구조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직거래 플랫폼 지원 정책이 최근 본격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왕오징어 산업은 단순한 어획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재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페루 해역의 대왕오징어는 단순한 수산 자원을 넘어, 해양 환경 변화와 인간 활동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이 생물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지역 경제를 지탱하면서도 어업 관리의 숙제를 남깁니다. 앞으로도 페루는 지속 가능한 어업과 해양 보전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균형 있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대왕오징어의 동향을 관찰하는 일은 단순한 생물학적 연구를 넘어, 해양 환경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다는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대왕오징어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해양 환경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왕오징어의 행동 양상과 분포 변화는 단순한 생태 반응을 넘어서, 기후 변화에 대한 생물학적 적응의 실시간 사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페루 정부와 과학계는 이러한 생물지표의 분석을 통해 보다 정밀한 해양 정책 수립과 기후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결국, 바다의 변화는 오징어의 움직임으로 드러나며, 우리는 그 메시지를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 FAO Fisheries Report 2023, United Nations
- Peruvian Ministry of Production 수산통계보고서, 2024
- NOAA Fisheries – Humboldt Squid Research, 2023
- 해양수산부 해외 수산정보 종합 자료집, 2024
- Marine Ecology Progress Series, Vol.701, 2023